안녕, 외톨이
안녕, 외톨이
홍익대학교와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회화와 디자인을 공부하고, 한국 일러스트레이션 학교에서 그림책을 공부했습니다. 지금까지 《또 잘못 뽑은 반장》, 《거꾸로 말대꾸》, 《얘들아, 학교 가자!》, 《눈 다래끼 팔아요》, 《가을이네 장 담그기》, 《왕할머니는 100살》, 《어서 오시‘개’, 짬뽕 도장》을 비롯한 여러 어린이책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가을이네 장 담그기》와 《얘들아, 학교 가자!》는 교과서에도 실렸지요. 쓰고 그린 책으로 《안녕, 외톨이》, 《언니는 돼지야!》, 《나무가 사라진 날》, 《어서 와요, 달평 씨》, 《도망쳐요, 달평 씨》, 《또 만나요, 달평 씨》, 《급식실의 달평 씨》, 《버럭 할머니와 달평 씨》가 있습니다.
“귀신보다 더 무서운 건 친구를 따돌리는 너희들이야!”
난 이제 외톨이가 아니야. 나한테도 친구가 생겼거든. 나만 아는 내 친구, 너희도 그 애가 보이니?
《안녕, 외톨이》는 생각할 거리가 많은 그림책입니다. 주인공 아이가 버드나무 밑에서 만난 여자아이는 정말 누구일까요? 집에 가기 싫다는 걸 보면 집안에 문제가 있는 아 이 같다가도, 이따금 독자를 향해 씨익 웃는 모습을 보면 진짜 버드나무 귀신같기도 합니다.
이 여자아이의 존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이야기는 달리 읽힐 수 있습니다. 외로운 아이가 비로소 제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를 만난 이야기로 읽힐 수도 있고, 이 외로운 아이의 마음을 알아줄 존재가 오로지 버드나무 귀신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로 읽힐 수도 있지요. 그것이 무엇이든 사람은 마음을 붙일 데가 하나라도 있으면 살아가게 마련입니다. 그러니 이왕이면 그 하나가 마음과 더불어 체온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은 욕심일까요?
신민재 작가에게도 그 하나는 사람이 아니라 일기장이었다고 합니다. 작가는 어릴 적 일기장을 뒤적거리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과 처음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화나고 속상하고 억울한 마음을 풀 데라고는 일기장밖에 없는 아이, 제 마음을 헤아려 주고 다독여 줄 누군가가 늘 아쉬운 아이를 말이지요. 그 아이는 작가의 일기장 속에만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의 등하굣길에도, 학원 오가는 길에도, 아파트 놀이터에도 고개를 푹 숙이고 어깨를 축 늘어뜨린 모습으로 섞여 있었지요.
작가는 그 아이가 고개를 들고 어깨를 펴고 활짝 웃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방법으로 아이와 놀아 주고, 아이의 얘기를 들어 주고, 아이의 편이 되어 주기로 했습니다. 아이를 대신해 짜릿한 복수(?)도 해 주고 말이지요. 그 복수의 한 가지가 바로 아이를 괴롭힐 궁리를 하는 동우의 얼굴이 아닐까 싶습니다. 귀신보다 더 귀신 같은 그 얼굴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함부로 짓밟는 사람의 마음은 이렇게 추악하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신민재 작가는 이 그림책을 쓰고 그리면서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고 합니다. 어른인 자신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어린 자신을 꼭 껴안고 “괜찮아. 다 지나갈 거야. 괜찮아.” 속삭여 주고 돌아온 것 같았다지요. 이 그림책이 이번엔 공간을 뛰어 넘어 같은 위로가 필요한 모든 아이들에게 가 닿기를 바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