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호박
똥호박
충청남도 예산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3학년까지 그곳에서 자랐습니다. 어린 시절 겪었던 재미있는 경험을 요즘 어린이들과 함께 깔깔대고 싶은 마음에 글로 옮겨 동화를 씁니다. 지은 책으로 그림책 《똥 호박》, 동화책 《책 좀 빌려 줘유》와 《심부름 가는 길》, 어른책 《옛날 신문을 읽었다》 들이 있습니다. 자유언론실천재단(www.kopf.kr)에 전 세계 귀신과 괴물들의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독일 부퍼탈 베르기슈 대학에서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의 그림 작가 볼프 에를부르흐 선생을 만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처음으로 쓰고 그린 그림책 《일어날까, 말까?》부터 《딸꾹질》, 《조금은 이상한 여행》, 《눈 행성》, 《우리 가족 납치 사건》에 이르기까지 어린이를 꼭 닮은 엉뚱한 상상력과 천진한 그림으로 사랑받았습니다. 그 밖에도 그림책 《쥐와 게》, 《소심왕 돌콩 날다!》, 《똥 호박》, 동화책 《심부름 가는 길》, 《책 좀 빌려 줘유》, 《도깨비, 파란 불꽃을 지켜라!》, 《말하는 일기장》, 《오메 할머니》를 비롯한 여러 어린이·청소년 책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누런 황금 똥 먹고 누렇게 영근 호박 맛 좀 보세유!
우리는 언제부턴가 똥을 세상에서 가장 불결한 것으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 몸에서 나온 그것조차 쳐다보기 싫어 볼일을 보자마자 잽싸게 변기 뚜껑을 덮고 흘려보내기 바쁘지요. 귀한 거름을 길에 버리기 아까워 아픈 배를 부여잡고 집으로 종종걸음 치던 시절도 있었다는데 말입니다. 그 시절이 까마득한 옛날이냐 하면 그렇지도 않은 것이, 요즘 아이들의 큰아버지뻘쯤 되는 이승호 작가의 어린 시절에도 그랬다는군요.
《똥 호박》 은 똥이 제값을 하던 시절에 똥 때문에 곤경을 치르고 똥 덕분에 쑥쑥 자라는 오누이 이야기입니다. 여섯 살 난 오빠 동이는 얼굴도 호박처럼 둥글둥글 성격도 호박처럼 둥글둥글합니다. 호박, 호박, 동네 아이들이 놀려도 벌쭉벌쭉 웃기만 하지요. 네 살 난 동생 동순이는 얼굴은 애호박처럼 곱다란데 툭하면 잉잉 우는 울보입니다. 누가 눈만 크게 부릅떠도 잉잉 울지요.
어느 심심한 봄날, 오누이는 마실을 나갔다가 하필이면 무섭기로 소문난 호통 아저씨와 딱 마주칩니다. 아저씨는 기차 화통을 삶아먹은 소리로 오누이를 불러 세우고는 뜬금없이 똥 타령입니다. “보자, 누구 똥이 좋을까? 동순아, 아침 많이 먹었니야? 아침 많이 먹었으문 배 안에 똥도 많이 찼겄네?” 하고 말입니다. 동순이가 “잘 모르겄는디유.” 하고 발뺌을 하자, “아녀, 똥이 꽈악 찼을 기여.” 하고 우겨댑니다.
호통 아저씨는 아마도 호박을 심을 모양입니다. 호박에는 똥거름만 한 것이 없다고 하니까요. 똥거름을 먹고 자란 호박은 달기도 달고 차지기도 차진데다 3년을 묵혀도 썩질 않는다지요. 그런데 이 아저씨 호통만 칠 줄 알지 부지런한 농사꾼은 못 되는 모양입니다. 호박을 심을 양이면 미리 구덩이를 파고 똥을 묻어 겨우내 푹 삭혔어야죠.
어쩌면 호박 구덩이에 아이들 똥을 묻는 건 호박을 잘 키워 내기 위한 아저씨만의 비방(秘方)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오누이를 상대로 조금 짓궂은 장난을 친 걸 수도 있겠고요. 어쨌거나 호박은 삭히지도 않은 똥일망정 오누이 똥을 푸짐하게 먹고 무성하게 자라납니다.
호통은 칠망정 셈은 바른 호통 아저씨는 여름에는 애호박으로, 가을에는 늙은 호박으로 오누이의 똥값을 톡톡히 치릅니다. 그해만이 아니라 그 이듬해에도, 또 그 이듬해에도……. 오누이는 호박과 더불어 호박엿 같이 진득한 정을 먹으며 자라서 아저씨가 되고 아줌마가 됩니다. 그리고 그 진득한 정은 오누이의 아이들에게까지 이어집니다.
“야들아, 내 얘기 좀 들어 볼텨?”
이 책에 글을 쓴 이승호 작가는 동화 《책 좀 빌려 줘유》로 어린이 책 세계에 첫 발을 들여놓은 늦깎이 작가입니다. 한때는 신문기자로 일한 적도 있고 신문으로 지난 시절을 돌아보는 책을 쓴 적도 있지만, 적어도 최근 몇 년 간은 글과 인연이 먼 삶을 살았습니다.
사실 전작 《책 좀 빌려 줘유》도 처음부터 어린이를 염두에 두고 쓴 글은 아니었습니다. 어린이 책에 그림을 그리는 친구가 소개해 준 작가들의 인터넷 카페에 자신이 처음 만난 어린이 책, 《걸리버 여행기》에 대해 쓴 글이 눈 밝은 작가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게 사달이었지요. 그 글을 어린이들에게도 읽히고 싶다는 주변의 끈질긴 꼬드김에 넘어가 책을 내기에 이른 것이고요.
그래서일까요? 이승호 작가의 책은 족히 4-50년은 된 옛날이야기임에도 “나 어릴 적엔 이렇게 고생하며 살았니라.” 하는 훈계조의 회고담과는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야들아, 내 얘기 좀 들어 볼텨?” 하고 꼬마 이야기꾼이 잔뜩 신이 나서 같은 반 친구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에 가깝지요. 그러기에 시간과 공간을 훌쩍 뛰어 넘어 지금 아이들에게도 성큼 다가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 책 《똥 호박》도 작가가 어릴 적 짝꿍에게 들으며 ‘이히히, 별꼴이여. 뭐 그런 황당한 어른들이 다 있댜. 딴 애들헌티도 얼렁 얘기해 줘야지.’ 했던 마음을 고스란히 담은 책입니다. 그 속에 똥이 호박이 되고 호박이 다시 똥이 되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순환이나 이웃 간의 구수하고 진득한 정에 대한 이야기를 티 안 나게 버무려 넣은 것은 어른의 마음일 테고요.
전작에 이어 이번에도 이승호 작가와 함께 호흡을 맞춘 김고은 작가의 그림은 독자들을 눈 깜짝할 사이에 흙먼지 풀풀 날리고 인분 냄새 폴폴 나는 옛 시골 마을로 데려갑니다. 어쩌면 어린이들에게는 낯설 수도 있는 그 시간과 공간이 조금도 낯설지 않은 것은 주인공들의 팔딱팔딱 살아 있는 표정과 몸짓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선 애호박 같은 얼굴을 흉하게 일그러뜨린 채 잉잉 우는 동순이,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고 항문에 힘을 쓰는 동이, 코털이 잔뜩 삐져나온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마뜩찮은 표정을 짓는 호통 아저씨……. 세 주인공의 꾸밈없는 표정과 몸짓은 이들을 어제도 보고 오늘도 보고 내일도 볼 친구나 이웃처럼 친근하게 느끼도록 해 줍니다. 배 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유쾌한 웃음은 말할 것도 없고요.
두 작가가 함께 작업한 동이와 동순이 이야기를 그림책으로든 동화책으로든 더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편집자들만의 욕심은 아니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