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깨밭 너구리
큰곰자리 15

참깨밭 너구리

글쓴이
유승희
그린이
윤봉선
출간일
2015년 03월 02일
형태
152×210㎜ , 반양장 , 240쪽
가격
11,000원
ISBN
979-11-85564-26-5
  • 주제어 꿈, 우정
  • 해외 수출 중국
  • 수상 내역 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도서
    소년한국일보 새학기 추천도서
    열린어린이 이달의 좋은 책
  • 대상 연령 5학년 이상
  • 교과 연계 국어 4-2-4 이야기 속 세상
    도덕 4-2-6 함께 꿈꾸는 무지개 세상
    국어 6-1-8 인물의 삶을 찾아서

저자 소개

  • 글쓴이 유승희

    1963년 안동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영국 리즈메트로폴리탄대학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습니다. 오랫동안 어린이책에 그림을 그리다, 물리학자 너구리가 주인공인 《참깨밭 너구리》를 세상에 내놓으며 동화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로 의인화된 동물이나 상상의 존재가 등장하는 이야기로 인간의 본성과 인간 사회의 여러 모습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글을 씁니다. 장편동화 《불편한 이웃》, 《별이 뜨는 모꼬》, 《콩팥풀 삼총사》, 《지구 행성 보고서》를 썼고, 《꽃을 먹는 늑대야》, 《야생마 길들이기》 들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 그린이 윤봉선

    서울대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했고오랫동안 세밀화 그림책아기 그림책동화책을 비롯하여 다양한 어린이 책에 그림을 그려 왔습니다수채화 물감으로 그린 그림이 소박하고도 유머러스하다는 평을 받고 있어요그림책 조금 다른 꽃눈이태극 1으랏차차씨름잡아 보아요를 쓰고 그렸으며참깨밭 너구리별이 뜨는 모꼬세밀화로 그린 보리 어린이 식물 도감배운다는 건 뭘까?조선 제일 바보의 공부》 같은 책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책 소개



어느 밤, 달고개 마을 외딴집에 사는 화가 아저씨에게 수상한 손님이 찾아왔어요,

눈자위가 거무죽죽한 게 틀림없는 너구리인데, 
아저씨네 참깨밭에서 우주의 미래가 달린 중요한 연구를 하고 있대요. 
허락도 받지 않고 말이에요.
제 나이가 자그마치 137억 살이라고 주장하는, 
이 뻔뻔하고 황당하고 사랑스러운 물리학자 너구리를 어쩌면 좋을까요?

어느 밤, 화가 아저씨가 잠을 청하려는데 똑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계세요?” 하는 조그만 목소리에 밖을 내다보니, 너구리 한 마리가 앞발을 공손히 가슴에 모으고 서 있는 것입니다. 눈자위가 거무죽죽한 게 틀림없는 너구리인데, 이게 무슨 조홧속인지……. 

“늦은 밤에 죄송하지만 여쭤 볼 게 있어서요. 참깨는 언제 수확할 계획이신지요?” 너구리가 공손히 묻는 바람에 아저씨는 얼떨결에 “참깨는 아직 수확하려면 좀 더 있어야 하는데.” 하고 대답해 줍니다. 처음엔 아저씨도 꿈이려니 생각했지요. 꿈이라 믿고 싶기도 했을 거고요. 하지만 이 너구리가 두 번 세 번 찾아와 같은 소리를 되풀이하는 데야 당해낼 도리가 있어야지요.  

세 번째 밤, 아저씨는 슬슬 짜증도 나고 호기심도 일어 참깨밭으로 나가 봅니다. 그런데 이 너구리가 참깨밭 가운데 접시 달린 나무통을 놓고 앉아서 무언가를 적었다 생각에 잠겼다가 하고 있지 않겠어요. 우리 우주가 언제 어떻게 종말을 맞을지 알아내려고 우주 밀도를 관측한다나요. 물이라도 부으면 줄줄 새게 생긴 나무통이 밀도 계측 장치라나 뭐라나. 아저씨는 이 너구리가 갈수록 태산이다 싶지만, 차마 참깨밭에서 몰아내지는 못합니다. 이 괴짜 너구리의 모습에 괴짜 화가인 자신의 모습이 겹쳐진 까닭이지요.  

 

가슴속에 빛나는 별을 품은 존재의 아름다움

너구리가 털북숭이 발을 불쑥 들이민 그날부터 화가 아저씨의 고즈넉한 시골살이는 시장통 저리 가라 싶게 시끌시끌해집니다. 마을 잔치에 나타나 음식을 바리바리 싸 가질 않나, 실험 도구를 구한답시고 온 마을을 휘젓고 다니질 않나, 타임머신을 만든답시고 아저씨네 전기를 끌어가 30만 원이 넘는 요금을 내게 만들질 않나……. 이 간 큰 너구리 녀석이 하루가 멀다 하고 사고를 쳐 대는 통에 아저씨는 롤러코스트를 탄 듯 간이 오그라드는 나날을 보냅니다. 
그런 주제에 뻔뻔하기는 또 어찌나 뻔뻔한지요. 어쩌다 아저씨 간식 시간을 알아낸 뒤로 아예 그 시간에 딱 맞춰 나타나서는 슬그머니 합석(?)을 합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아저씨에게 착한 사람이 될 기회를 만들어 준 거라나요. 아저씨가 선심 한 번 크게 쓸 요량으로 생일 선물을 해 주겠다니까, 고급 레스토랑에 데려가 달라는 황당한 요구를 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읽고 버린 여성지를 가져 와서 사진까지 보여 주면서 말이지요. 그뿐인가요. 겨울 문턱에 들어서자 제 새끼들 먹일 양식까지 당당하게 빌려(?) 갑니다. 내년 여름에 물고기를 잡아서 갚겠다나 어쨌다나. 
그럼에도 이 너구리가 밉지 않은 것은 가슴 속에 빛나는 별 하나를 품고 있는 까닭입니다. 왜 그렇게 힘들게 연구를 하느냐는 질문에 너구리는 오히려 화가 아저씨에게 되묻습니다. “선생님은 왜 태어나셨어요? 무엇 때문에 사세요? 그런 의문을 품어 본 적 없어요? 어쩌다 보니 사람으로 태어나 살고 있으니까, 아무 생각 없이 사는 대로 살다 죽는 건가요? 나는 내가 왜 생겨났는지 궁금하거든요. 나는 무엇일까, 내가 사는 이 세계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이 우주는 끝이 있는 걸까, 궁금한 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꾸 생기는걸요.” 
너구리는 그 숱한 의문을 풀기 위해 제 존재의 근원인 우주를 연구합니다. 제 존재를 이루는 모든 것은 137억 년 전 이 우주와 더불어 생겨났기에 우주의 비밀을 풀면 제 존재의 비밀도 풀 수 있으리라 믿는 것이지요. 너구리의 짧은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 연구해도 풀지 못할 줄 뻔히 알면서도 말입니다.
그 꿈이 높고 멀고 아득하다 해도, 그래서 끝끝내 닿을 수 없다 해도, 꿈을 좇는 존재는 아름답습니다. 누구 앞에서건 당당할 수 있습니다. 화가 아저씨는 그 아름다움을 알아보고, 그 당당함을 사랑하기에 너구리를 내칠 수 없습니다. 화가 아저씨가 저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고,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는 줄 알기에 너구리 또한 아저씨 앞에서는 마음껏 어리광을 부릴 수 있는 것이지요.  

 

네 가슴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 봐

이 책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두 사람의 삶도 화가 아저씨나 너구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두 사람은 강원도 산골에 살면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텃밭 농사를 짓고, 또 물리학을 공부합니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공부한 두 사람이 전공이나 생활과는 무관한 공부를 하는 까닭 또한 너구리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공통적으로 작용하고 또 적용할 수 있는 원리를 찾고 싶어서이지요. 그 과정 자체에 의미를 두고 그 과정 자체에서 기쁨을 느끼기에 끝끝내 찾지 못한다 해도 크게 상관은 없습니다. 그 속사정이야 다 알 수 없지만 두 사람의 삶은 무척이나 느긋하고 충만해 보입니다.
그런 두 사람이 이 책을 쓰고 그린 건 어쩌면 고작 한 줌밖에 통과할 수 없는 좁은 길로만 숨 가쁘게 달려가는 아이들을 불러 세우고 싶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잠시나마 숨을 고르고 눈을 들어 우주를 보라고 말입니다. 137억 년이라는 이 우주의 역사에 비하면 인간의 삶은 그야말로 찰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짧은 시간을 가장 충실하게 보낼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 답은 귀도 닫고 눈도 닫고 저마다의 가슴에게 물어 봐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