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딱지 할아버지
코딱지 할아버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철학을,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문예창작학을 공부하고 지금은 어린이 책에 글을 씁니다. 그동안 쓴 책으로 《세 발 두꺼비와 황금 동전》, 《화내기 싫어》, 《나랑 밥 먹을 사람》, 《도와줘요, 똥싸개 탐정!》, 《지렁이 울음소리를 들어 봐!》, 《나를 찍고 싶었어!》, 《거짓말이 찰싹 달라붙었어》, 《아주 바쁜 입》, 《밤을 지키는 사람들》, 《코딱지 할아버지》 들이 있습니다.
대학에서 한국화를 전공하고 게임 캐릭터 디자인과 시사 카툰, 광고, 웹툰을 그리는 등 다양한 작업을 해오다 우연한 기회에 그림책을 내게 되었습니다. 그림책 《10초》와 《플라스틱 섬》을 쓰고 그려 볼로냐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되었으며, 나미 콩쿠르 은상과 BIB 황금패상을 받았습니다. 《잘 들어주는 개》, 《신통방통 홈쇼핑》, 《시원탕 옆 기억사진관》, 《우리 동네 택견 사부》, 《산타 할아버지가 우리 할아버지라면》, 《코딱지 할아버지》을 비롯한 여러 어린이책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오래오래 간직하고픈 할아버지와 나만의 비밀!
할아버지와 나는 둘만 아는 비밀이 많다.
할아버지가 코딱지 멀리 튕기기 검은 띠라는 거.
그 비법을 나한테만 알려줬다는 거.
그리고…… 내가 할아버지의 새 이빨이라는 거.
할아버지가 세상에 남겨 둔 새 이빨이라는 거……
진짜 좋아하는 것과 이별하는 법
민이네 할아버지는 코 파기 대장입니다. 콧구멍이 커서 코딱지도 엄청나게 나오지요. 민이는 할아버지의 커다란 콧구멍과 엄청난 코딱지가 부럽기만 합니다. 엄지와 검지로 코딱지를 돌돌 말아 톡 튕기는 모습도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습니다. 코딱지 멀리 튕기기도 태권도처럼 띠를 준다면 검은 띠도 너끈히 따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는 그 비법을 아무도 몰래 민이에게만 알려 주었습니다. 할아버지와 민이는 둘만 아는 비밀이 진짜 많습니다. 진짜 좋아하는 사이라서 그렇지요.
그런데 민이에게 코 파는 것도 잊어버릴 만큼 좋아하는 게 생겼습니다. 바로 흔들리는 앞니입니다. 혀로 쓱 밀어도 흔들흔들, 손가락으로 슬쩍 건드려도 까딱까딱…… 민이의 마음은 온통 앞니에 가 있습니다. 좋아하는 간식도 다 마다할 만큼 말이지요. 껌이나 과자, 떡 따위를 먹다가 앞니가 홀랑 빠져 버리면 큰일이니까요.
하지만 엄마는 민이의 앞니를 보자마자 곧 빼야겠다며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합니다. 할아버지라면 진짜 좋아하는 것과 언제까지나 헤어지지 않는 법을 알 것도 같은데, 요즘은 통 얼굴을 볼 수가 없습니다. 너무 바빠서 민이를 보러 올 틈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민이는 엄마 아빠 손에 이끌려 할아버지를 만나러 갑니다. 할아버지는 왕콧구멍에 고무관을, 손등에는 주삿바늘을 꽂은 채 병원 침대에 힘없이 누워 계십니다. 저래서는 코를 팔 수도 코딱지를 돌돌 말아 튕길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민이는 할아버지의 기운을 북돋워 주기로 합니다. “내 이빨 한번 흔들어 볼래? 그 대신 딱 한 번만이야.” 하고 말이지요. 그런데 할아버지가 손을 갖다 대자마자 그만 앞니가 쑥 빠져 버립니다. 애써 미뤄 왔던 이 이별 뒤에는 애써 외면했던 또 다른 이별이 기다리고 있지요. 민이는 진짜 좋아하는 것들과의 이별을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떠난 이들이 남겨 둔 것들
신순재 작가는 여러 해 전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이 글을 썼습니다. 어린 딸이 할아버지와 좀 더 많은 것들을 공유할 수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담아 쓴 글이었지요. 어린 손녀와 친구처럼 허물없이 지내는 할아버지를 그린 것도 그래서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 글로 가장 큰 위로를 받는 사람은 다름 아닌 작가 자신이었다고 합니다.
어느 누구도 사랑하는 이들과의 영원한 이별을 피해 갈 수는 없습니다. 그런 이별 뒤의 삶을 견디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신순재 작가에게는 어린 딸 안에, 그리고 자신 안에 남은 아버지의 흔적이었던 모양입니다. 어린 딸이, 그리고 자신이 그 흔적을 품은 채 뚜벅뚜벅 살아 내는 것이야말로 떠난 이에 대한 최고의 공양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나아가 앞으로도 수많은 이별을 겪으며 어른이 되어 갈 어린 딸과 독자들에게 그런 이별 또한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라고 귀띔해 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젖니가 빠지고 간니가 돋듯 그런 이별을 딛고 더 단단하게 성장해 가기를, 그리고 이 유한한 삶의 매순간을 충실히 살아가기를 빌어 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랄프 왈도 에머슨의 말처럼 ‘네가 헛되이 보낸 오늘이 어제 죽어 간 이들이 그토록 살고 싶었던 내일’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말이지요.
이명애 작가가 이 책을 노랑으로 가득 채운 까닭도 크게 다르지 않을 듯싶습니다. 이 책의 노랑은 길건 짧건 저마다의 한 생을 충실히 살아 낸 이들의 어제를 기리는 색이자, 그 위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꽃으로 피어날 아이들의 내일을 축복하는 색입니다. 그사이에 이별이라는 겨울이 잠시 끼어들지라도 봄은 또 어김없이 찾아올 테니까요. 두 작가가 따로 또 같이 여러 해를 품어 온 이 책이 이별이라는 힘든 겨울을 지나는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어 주기를 바라 봅니다.
주요기사
[부산일보]2019-12-05 할아버지는 “사랑한다”면서 왜 떠나려고 하나요?
[동아일보]2020-01-04 할아버지와 코딱지 튕기기 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