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톨이 꼼
외톨이 꼼
만화와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활동해 오다 뒤늦게 접한 그림책에 매력을 느껴 그림책 작가의 꿈을 키웠습니다. 대한민국 창작만화공모전 우수상, SICAF 국제만화 페스티벌 일러스트 부문 최우수상 등을 수상했으며, 애니메이션 <로봇트레인 RT>에 콘셉트 아티스트로 참여했습니다. 그린 책으로 《배가 된 도서관》, 《인류를 뜨겁게 사랑한 노벨 평화상 수상자들: 반핵 운동가 편》이 있습니다. 《외톨이 꼼》은 작가가 쓰고 그린 첫 번째 그림책입니다.
나뭇잎에 반짝이는 햇살도, 살짝 열린 문틈으로 들어오는 바람도 기분 좋은 오후예요. 아이들이 엄마 아빠 손을 잡고 걸음을 재촉하네요. 잔뜩 신이 난 발걸음은 어디를 향하는 걸까요? 아하, 저기 파란 간판을 단 길모퉁이 인형 가게로 가는 거였군요.
우리는 종종 눈에 보이는 것만 받아들이고, 그 너머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곰 인형의 겉모습만 보고 무섭다며 멀리 한 사람들처럼요.
물론 어쩐지 다가가기 힘든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외모 때문이든 말투나 태도 때문이든, 우리의 주인공 곰 인형처럼 뭔가 심통 사납고 잔뜩 음울한 기운을 품고 있는 사람에게 선뜻 다가가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 속 꼬마 아이의 ‘꼼!’이라는 작은 외침은 우리에게 커다란 울림을 줍니다. 누군가와 관계 맺기를 어려워하며 심통을 부리는 곰 인형 같은 이들에게도, 그런 이들을 색안경 끼고 바라보며 비난하거나 외면하는 사람들에게도 말이지요.
어쩌면 우리는 상대방을 향한 한 걸음을 너무 크게 생각하는지도 모릅니다. 꼭 친구가 되고 있는 그대로를 전부 받아들일 수 있어야만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는 거라고요. 물론 그럴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한 걸음은 말 그대로 ‘한 걸음’입니다. 상대방과 나 사이에 선을 긋지 않고 그저 만나면 ‘안녕’하고 인사하는 한 걸음, 눈이 마주치면 찡그리기보다 빙긋 웃어 보이는 한 걸음, 그 작은 한 걸음이 중요한 것 아닐까요.
마주 보는 두 얼굴은 서로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내가 눈썹을 찡그리고 있다면 상대방도 나를 보며 인상을 쓰고 있고, 내 입 꼬리가 스르륵 올라가 있다면 상대방도 나를 보며 웃어 주고 있는 거라고요. 생각해 보면 딱딱한 표정을 한 할아버지가 엘리베이터 문을 잡아 준 누군가에게 보낸 짧은 웃음에, 지하철에서 내내 시끄럽게 군 꼬마가 내리기 전에 씩씩하게 인사하며 짓는 웃음에 나도 모르게 환하게 웃어 본 경험이 모두 있을 거예요.
곰 인형도 사실은 그렇게 무섭게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모두가 찡그린 얼굴로만 곰 인형을 바라봤으니 점점 더 화난 것처럼 보였을 테지요. 그래서 아이가 처음으로 곰 인형을 보며 웃어 주자, 곰 인형도 처음으로 환한 웃음을 짓게 되었고요.
저마다 생김새는 달라도 안을 들여다보면 모든 인형은 새하얀 솜뭉치를 품고 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그러니 누군가를 만나면 한번 눈을 마주하고 빙긋 웃어 보세요. 외로운 곰 인형에게 단 하나뿐인 친구가 생긴 것처럼 상상도 못했던 커다란 행복을 느끼게 될 거예요.
작가의 말
《외톨이 꼼》은 친구가 보여 준 어느 동영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첫 그림책 작업을 구상하며 고민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요. 자신이 직접 찍은 것이라던 그 동영상에는 골목에 버려진 곰 인형의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잠시 후, 화면 속에는 또 다른 친구들이 등장하더니 곰 인형을 갖고 짓궂은 장난을 치기 시작했어요. 던지고, 때리고, 밟고. 곰 인형의 몸은 이내 두 갈래로 갈라졌고, 그 안에서 나온 하얀 솜뭉치들이 골목에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꼬질꼬질한 곰 인형이었지만 솜뭉치만은 참 새하얗더랬죠. 어쩐지 씁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 친구들에게 보여 줄 그림책을 만들자.’ 《외톨이 꼼》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건 여전히 어려운 일이었고, 오랜만에 하는 수채화도 내 맘 같지 않았지만 그 사소했던 동기가 결국은 작품을 끝낼 수 있는 가장 큰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정신없던 작업의 시간이 지나고, 다시금 곰 인형의 새하얀 솜뭉치를 생각해 봅니다. 외면에 가려진, 누구나 갖고 있는 새하얀 솜뭉치. 잊고 있던 그것을 다시금 꺼내 보는데 《외톨이 꼼》이 작은 도움이 되길 바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