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라 그림책을 읽습니다

어른이라 그림책을 읽습니다

글쓴이
김서정
출간일
2026년 06월 24일
형태
148×210㎜ , 반양장 , 236쪽
가격
18,000원
ISBN
979-11-5836-625-4
  • 주제어 그림책, 책읽기, 인생, 위로, 치유
  • 대상 연령 일반(성인)

저자 소개

  • 글쓴이 김서정

    어린이 청소년 문학 평론가이자 번역가, 작가로 활동하는 한편, ‘김서정스토리포인트’에서 동화와 그림책에 대해 가르친다. 평론집으로 《잘 만났다, 그림책》, 《캐릭터는 살아 있다》, 《판타지 동화를 읽습니다》 등이 있고, 《어린이 문학의 즐거움》, 《안데르센 메르헨》, 《그림 메르헨》을 비롯한 수많은 책을 옮겼으며, 《두로크 강을 건너서》, 《용감한 꼬마 생쥐》, 《앤티야, 커서 뭐가 될래?》, 《나의 사직동》 등의 동화와 그림책에 글을 썼다.

책 소개



“어른이지만, 아니 어른이라 그림책을 읽습니다,”

어린이‧청소년 문학 평론가 김서정의 첫 그림책 에세이


인생이라는 한밤중, 한겨울, 깊은 숲속에서 

나만의 부엉이를 만나는 시간!

 

개요

40년 가까이 어린이‧청소년 문학 비평가이자 번역가, 교육자, 작가로 활동해 온 김서정의 첫 그림책 에세이. 오랜 세월 연구와 비평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던 그림책을, 진짜 독자로서 만나게 된 첫 순간부터 그림책을 통해 삶의 비밀스러운 의미를 엿보고, 슬픔을 딛고 일어설 힘을 얻고, 삶을 긍정하게 순간들에 대해 솔직하고 담담하게 들려준다. 이미 그림책의 매력에 흠뻑 빠져든 독자들에게는 깊은 공감을 안겨 줄, 이제 막 그림책과 친해지기 시작한 독자들에게는 믿음직한 길잡이가 되어 줄 책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삶의 굽이굽이마다 발밑을 비춰 주는 보름달 같고, 미몽을 깨우는 부엉이 울음소리 같은 자신만의 ‘인생 그림책’을 만나기 바란다. 

 

책 속에서

그림책을 보는 눈에 문득 어떤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부엉이와 보름달》을 보던 때였습니다. (…) 저는 부엉이를 보러 나온 것입니다. “얼마나,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렸는지 모”르는 아빠와의 부엉이 구경. 조용히 해야 하고, 제 몸은 알아서 따뜻하게 해야 하고, 무서워도 용감해야 하고, 못 보더라도 실망하지 않아야 하는 부엉이 만나는 길에 나선 것입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제가 세상에 나온 이유는 그것 같았습니다. 

-20~21쪽, ‘나의 부엉이를 만나러 가는 길’ 중에서

 

처음 읽은 지 수십 년이 지난 어느 때, 불현듯 스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아, 이건 선택에 관한 이야기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이 책이 완전히 달라 보였습니다. ‘선택받으려는 자, 선택해야 하는 자들에게 닥치는 예측 불가하고 아이러니한, 뒤통수 제대로 치는 결과를 보아라.’ 백만 마리 고양이들은 그런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 우리 인생이 대체로 그렇지 않은가요? 이렇게 해야지, 이렇게 하지 말아야지, 마음먹은 대로 되는 일이 얼마나 있던가요? 공부 안 한다고, 대학 안 가겠다고, 상업 고등학교 시험을 봤던 제가 수십 년을 대학에 나가고 책상 앞에 앉아 있게 되다니, 말이 되냐고요. 그러니까 제 인생에서도, 눈에 안 띄게 덤불 밑에 숨어 있던 “비쩍 마르고 털이 거칠거칠한” 녀석이 나와서 설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럴듯한 계획, 예쁘고 멋진 고양이들은 다 어디로 사라지고 말이죠. 

그런데 그 꾀죄죄한 고양이는 노부부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양이”로 등극합니다. 여기에 옛이야기의 희망, 그림책의 위안이 있습니다. 선택하는 것도 선택받는 것도 다 실패인 것 같고 말도 안 되는 딴 길로 간 것 같지만, 결국은 제자리를 찾습니다. 재앙 같던 결과가 축복으로 바뀌고 모두 행복해집니다.

-43쪽, ‘계획대로 흘러가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마는’ 중에서

 

“너는 누군가에게 뜨거운 연탄이었던 적 있는가?”라고 물은 시인도 있지만, 이 작가들은 ‘너는 네 트랙터를 이렇게 인생 전체를 걸고 지킨 적 있는가?’라고 묻는 것 같습니다. 뜨거운 연탄은 결국 재가 되고, 아이가 지키지 못한 트랙터는 홀로 녹슬겠지만, 중요한 건 뜨겁게 지켰던 ‘적’이 아닐까요. 우리 인생을 오래 지탱하는 건 한때의 순정한 타오름일 테니, 그런 시간과 대상이 있었다는 건 작은 구원과도 같은 일이 아닐까 합니다.

-64~65쪽, ‘지킬 수도 놓을 수도 없어 갈팡질팡’ 중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지금의 행복과 불행의 원천이 어린 시절에 있음을 고백하는 경우를 종종 만나게 됩니다. 두려움과 미움과 아픔 같은 부정적 감정도, 기쁨과 희망 같은 긍정적 감정도, 황홀한 맛이나 촉감 같은 감각의 원천도 어린 시절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재의 문제에 대한 답을 어린 시절에서 찾고, 지금의 결핍을 그때로 되돌아가 충족시키기도 합니다. 어린 나는 지금 나의 해답이며 해결이며 목적지일 수 있습니다. 어린 나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충만하고 너그럽고 지혜로울 수 있습니다. (…) 어린 나에게 위로 받고 격려 받아 새 길을 나설 수 있게 해 주는 책. 그림책에 대한 저의 정의에 또 한 줄이 보태졌습니다. 

-81~84쪽, ‘세상을 헤매고 헤매다 돌아가는 그곳’ 중에서

 

아이들이 뒷걸음질 친다고 그냥 받아 주는 건 어른의 할 일이 아닐 것입니다. 앞으로 나아가도록 밀어주고 끌어 주고 격려해 주어야지요.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 때가 있고, 하고 싶은 일을 접어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알려 주어야지요. 어른들의 이런 자세가 아이들에게는 아마 자신을 산산조각 내는 ‘고함’으로 느껴질 때가 있을 것입니다. 꼭 물리적으로 큰 소리를 내야만 고함인 것은 아닙니다. 잘못에 대한 지적, 단호한 거부, 엄격한 눈빛 한 번, 절레절레 흔드는 고갯짓 하나도 고함일 수 있습니다. 꾹 다문 입에서 나오는 침묵이 고함이 되기도 합니다. 어른들에게는 이런 ‘고함’으로 아이를 한 단계 한 단계 앞으로 끌어 주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산지사방을 헤매며 자신을 넓혀 가야 할 책임이 있고요. 

-104~105쪽, ‘엄마의 고함이 필요한 이유’ 중에서

 

그러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대답이 없다고 돌아서 떠날 게 아니라 밤새 지켜보는 일이라는 거겠지요. 목청 높이는 게 아니라 부드럽게 지저귀는 일이고요.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말 없던 블루가 올려다보고 입을 열고 마침내 함께 날아오를 때까지 그 일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하늘을 나는 건 블루와 옐로 둘만이 아닙니다. 핑크와 그린, 브라운과 퍼플, 그레이와 아쿠아마린… 가지각색 새들이 숲과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누구 하나가 끈질기게 부드럽게 지저귀어 저 어두운 밑바닥에 웅크리고 있던 누구 하나를 불러올리는 것은, 온 세상이 함께 기뻐할 일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142~143쪽, ‘세상 모든 시간을 가진 듯 기다려 준다면’ 중에서

 

부모가 놓아주지 못하면 아이가 떠나야 합니다. 부모가 따라나서면 아이가 막아 세울 수 있어야 합니다. 부모가 두려워하면 아이가 진정시킬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압축해서 말하면 낯설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학교에서는 배우지 않는 관계, 일상에서는 드문 장면이니까요.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길고 긴 삶의 과정에서 이런 상황에 부닥치고 놀라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요. 부산한 일상 속에서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다가 그림책 속에서 명료하게 깨닫게 되는 삶의 진실. 서로의 성장을 위해 부모와 아이가 어떤 위치에서 어떤 태도를 보일 수 있는지에 대한 예시가 그림책 속에는 무궁무진합니다.

-154~155쪽, ‘부모가 물러난다, 아이가 나아간다’ 중에서

 

끝까지 다 보고 나도 별로 할 말이 없는 책이 있는가 하면 표지만 보고도 거기서 멈춰 서서 하염없이 생각의 실타래를 풀어낼 수 있는 책이 있습니다. 그런 책을 만난다는 건 정말 운이 좋은 일입니다. 그 책 어딘가에 내가 건드려지는 지점이 있기 때문이니까요. 기억 밑바닥에 눌려 있던 나 자신을 꺼내고, 그늘 속에 웅크리고 있던 나에게 빛이 떨어지고, 있는 줄도 몰랐던 다른 나와 마주칠 수 있는 지점 말입니다. 그렇죠. 책을 읽는다는 건 결국 그 수많은 나를 찾아내고 갇혀 있던 나를 해방시키는 일이라는 소리지요. 

-185~186쪽, ‘그러던 어느 날’이 ‘그래서 이날!’로 바뀌는 순간’ 중에서

 

그러니까 나를 뒤집어 놓는 “그러던 어느 날”은 긴 일상들 가운데 짧은 한순간인 것입니다. 순간에 사로잡혀 주저앉지 않고, 지금까지 길게 살아왔던 것과 또 다른 긴 삶을 다시 살게 해 주는 날입니다. 그러니까 “어느 날”은, 고마워하면서 버릴 수 있는 날인 것입니다.

“어느 날”을 버린 주인공의 변모가 눈부시게 화려합니다. (…) 양쪽으로 접힌 페이지를 펼치면 눈으로 뛰어드는 광경, 눈부시게 커다란 잎과 꽃 사이에서 벌거벗은 채 양 팔을 하늘로 치켜들고 성큼 걸음을 내딛는 여성의 모습은 정말 압도적입니다. 한국 그림책 역사에서 손꼽을 만한 명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187~189쪽, ‘그러던 어느 날’이 ‘그래서 이날!’로 바뀌는 순간

 

사랑이 증오로 바뀌는 이 처연한 이야기가 저는 너무나 좋았습니다. 증오는 그 이전에 사랑이었다는 소리니까요. 사랑은 사랑이기만 하면 너무 싱겁고 힘이 없습니다. 증오가 증오이기만 하면 막막하고 절망적이지요. 하지만 증오로 뭉쳐지는 사랑, 사랑이라는 핵이 숨어 있는 증오는 강력한 생명의 에너지를 뿜어내는 것 같습니다. 내 표면의 싸늘함도 근원은 뜨거움이 아니었을까, 뜨겁게 끓어오르던 것이 차갑게 식어 단단해진 것이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그 생각만으로도 내 안에 부드럽고 따뜻한 것이 차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207~208쪽, ‘오직 사랑만이 증오의 마법을 이기리라’ 중에서

 

매사 불만투성이인 한 심술궂은 중년 여인의 원인 모를 미움과 자괴감에 이토록 아름다운 빛을 비춰 준 이 책이 참 사랑스럽습니다. 중년 여인뿐일까요. 미움과 자괴감뿐일까요. 주변을 둘러보면 알 수 없는 낙담과 무기력과 슬픔에 무너지는 사람들이 드물지 않습니다. 그들이 예전 자신이 왕 혹은 여왕이었던 때의 기억을 되살려 내면 좋겠습니다. 얼마나 간절한 그리움과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는지 기억해 내면 좋겠습니다. 그 사랑은 결국 이루어지고, 갈매기 날개에 실려 날아간 “해가 지지 않는 머나먼 바다의 바위섬”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음을 믿게 되면 좋겠습니다. 지지 않는 해처럼 꺼지지 않는 희망이 저마다의 가슴에서 빛나기를 바랍니다. 

-209쪽, ‘오직 사랑만이 증오의 마법을 이기리라’ 중에서

 

 이 작가에게 고사리 꺾기는 보지 못한 채 지나쳤던 것, 떠나갔던 것, 부정했던 것들을 다시 보고 찾아내고 긍정하는 일인 것 같습니다.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가면서, 저쪽에 있는 나와 이쪽에 있는 나를 만나게 하는 일인 것 같습니다. 참 건강하고 조화롭게 자기 자신을 만날 수 있는 계기를 고사리가 만들어 주는 거죠. 이 작가 모녀의 고사리 꺾기에 동행하고 싶어집니다. 구성진 노래 같은 제주 말을 들으면서 말똥도 밟고, 가시밭에서 엉금거리기도 하고 싶습니다. 

-216쪽, ‘이쪽 나와 저쪽 나를 만나게 하는 일’ 중에서

 

먹구름 없이 햇살만 빛나는 자연 속에서, 서로 아끼고 보듬어 주는 가족과 이웃으로만 이루어진 들쥐 공동체를 그리는 이 이야기는 너무나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입니다. 머릿속이 새하얘질 정도입니다. 

제가 이 책(들)을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새하얀 머릿속. 그냥 텅 빌 때도 있고, 쓸데없이 꽉 차서 새카매질 때도 있는 머릿속을 가끔 편안히 숨쉬게 해 주는 게 그런 새하얀 순간인 것 같아서입니다. 온몸의 힘을 풀고 약간 멍한 상태로 들쥐처럼 푸른종꽃 아래 누워 있는 느낌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책이 아니라면 그런 특별한 기분을 어디서 누릴 수 있을까요. 좋은 그림책이 주는 행복입니다. 앞으로 또 어떤 분노와 인내를 동원해야 하는 일이 닥칠지 모르겠지만, 이런 비움과 휴식의 시간이 있으니 그렇게 낙담할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235-236쪽, ‘머릿속이 새하얘지도록 아름다운 공동체’ 중에서

 

어른이 그림책을 읽는 까닭

어린이의 세계에서 솟아오른 엄청난 에너지

최근 10여 년 사이, 그림책 분야에서 생겨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자신을 위해 그림책을 구매하는 어른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저자 김서정은 이 현상의 본질을 “다른 예술 장르는 어른의 영역에서 아이들의 영역으로 내려오지만, 그림책만은 아이들의 영역에서 어른의 영역으로 솟아 올라간 장르”이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저자는 이토록 엄청난 에너지를 품은 그림책이 자신의 삶 속으로 걸어 들어와 때로는 섬광처럼 삶의 비의(秘義)를 보여주고 때로는 봄볕 같은 위로를 건넸던 순간들을 이 책에서 낱낱이 펼쳐 보인다.   

저자의 인생 그림책 목록 첫 줄을 차지하는 책은 《부엉이와 보름달》이다. 이 책을 처음 만난 때를 저자는“어린아이들이 주로 보는 책”이라고 여겼던 그림책을 보는 눈에 그야말로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순간”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림책 속 가족의 통과의례인 ‘부엉이 구경’은 저자에게 와서 한겨울, 한밤중, 깊은 숲속 같은 삶을, 그래도 끝까지 걸어 내야 하는 이유로까지 확장된다. 그림책이 어린이의 영역에서 어른의 영역으로 솟아 올라갈 수 있는 힘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몇 줄 안 되는 글에 몇 쪽 안 되는 분량”이지만 그 안에 삶의 진면목을 담을 수 있는 장르라는 점 말이다. 

 

어른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그림책 처방전

《어른이라 그림책을 읽습니다》는 그저 연구와 비평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던 그림책이 불쑥, 혹은 새삼 저자의 마음에 파고들어 삶의 진면목과 마주하게 만든 순간에 대한 기록이다. 비평가로서 분석적인 시선을 잃지 않으면서도 독자로서 순순히 감탄하고 감동하고 위로받은 순간을 솔직하게 기록한 글은, 그 자체로 훌륭한 비평적 텍스트이자 독자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그림책 처방전이기도 하다. 

전체 3부로 이루어진 책의 1부에는 저자에게 삶의 비밀스러운 의미를 엿보게 해 준 그림책 이야기를 모았다. 저자는 젬베 앙상블 연습실에서 ‘노예의 음악’이라 불릴 만큼 단조롭고 반복적인 리듬의 둔둔을 연주하다 문득 그림책 《키오스크》를 떠올린다. “우리 실존의 기본 조건이 키오스크(신문과 잡지 따위를 파는 작은 가판점)”라는 깨달음을 안겨 주는 동시에, 좁아터진 자리의 지루한 일상에 충실한” 너와 나의 삶에 경의를 표하게 만든 그림책이다. 현대 그림책의 시작이라 일컬어지지만 그 이상의 의미는 찾지 못했던 그림책 《백만 마리 고양이》는 긴 시간을 지나서야 비로소 새로운 의미로 저자에게 다가든다. 정답이라 여겼던 선택이 꼭 정답만은 아니고, 오답이라 여겼던 선택이 꼭 오답만은 아닐 수 있다는 삶의 아이러니를 일깨우면서 말이다. 그리하여 저자 안에서 자신의 지난 선택을 후회와 회한으로 돌아보는 이들에게 다정한 위로를 건네는 책으로 완성된다. 저자는 《트랙터도 데려가》로 우리 삶을 지탱하는 “한때의 순정한 타오름”을 상기시키고, 《앙통의 완벽한 수박밭》으로 ‘내려놓지 못하는 마음’을 따뜻하게 안아 준다. 어머니와의 이별을 받아들이게 해 준 《나의 호랑이》와 “어린 나에게 위로 받고 격려 받아 새 길을 나설 수 있게 해 주는” 그림책의 가치를 새삼 깨닫게 해 준 《돌아와, 라일라》 이야기 또한 깊은 울림을 준다. 

2부에서는 제대로 된 부모 노릇, 어른 노릇, 사람 노릇을 화두로 던지는 그림책을 톺아 본다. 그중 백미는 수많은 대한민국 엄마를 반성하게(?) 만들었던 그림책 《고함쟁이 엄마》에 대한 새롭고도 통쾌한 해석이다. 아이에게 더 잘해 주지 못해(?) 죄책감에 시달리던 양육자라면 더없는 안도감과 해방감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그렇다고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저자는 곧이어 《록사 벅슨》을 들이대며 지나친 안전주의로 아이들에게 자유 놀이를, 부딪치고 다치고 깨지며 성장할 기회를 빼앗는 세태를 날카롭게 꼬집는다. 부모가 물러나야 아이들이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하는 세 권의 그림책 《괴물들이 사는 나라》, 《꼭 잡아 주세요, 아빠》, 《메두사 엄마》에 대한 이야기도 양육자들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다.

3부는 저자가 분더캄머(비밀의 방)에 간직하고 싶은 그림책, 수많은 보물을 간직한 분더캄머로서의 그림책에 관한 이야기다. (그림책은 아니지만) 저자를 어린이 문학의 길로 이끈 길잡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60가지 판본에 실린 다양한 일러스트를 모은 책 《마이 페이버릿 앨리스》를 시작으로, 어른을 위한 그림책으로서 철학적 깊이와 예술적 성취를 이룬 국내외 그림책들를 소개한다. 이 분더캄머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그림책은 질 바클램의 《찔레꽃 울타리》다. 여러 해 전 대통령 선거를 마치고 돌아온 저자의 복잡한 머릿속을 하얗게 비워내고 더없이 무해하고 다정한 공동체에 대한 판타지로 채워 준 그림책, 그 아름다운 판타지를 독자와도 함께 나누고 싶은 까닭이다.

반평생을 그림책과 더불어 살아 온 저자의 인생 그림책 리스트(물론 그림책에 진심인 작가들이 있는 한 저자의 인생 그림책 리스트는 계속해서 업데이트될 것이지만)는 어린이 못지않게 위로와 인정, 격려와 응원이 필요한 어른들에게 맞춤한 그림책 처방전이 되어 줄 것이다. “인생은 한겨울 한밤중 깊은 숲속이지만, 우유 같은 눈과 환한 보름달과 부엉이가 있는 곳입니다. 나는 추위와 두려움과 실망에 맞서며 그 숲길을 지나 부엉이와 드디어 눈을 맞추는 어린아이입니다.”라는 저자의 고백처럼 이 책을 만나는 독자들도 흰 눈 같고 환한 보름달 같고 부엉이 같은 자신만의 ‘인생 그림책’을 만나기를 바란다.